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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바이링구얼(Bilingual; 이중언어자)의 인지적 장점

by 포근한 심리학자 2022. 10. 12.

이중 언어 사용(Bilingualism)에 대한 초기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이중 언어 사용의 단점에 대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들이 이중 언어를 사용하면 정신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연구나,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어린이에 비해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어린이들의 지능검사 점수가 낮다는 연구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변인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연구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은 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최근 연구들은 이중 언어 사용에 인지적 장점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중 언어 사용을 통해 언어 기능 외에도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 Executive Control) 향상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 인지 기능 중에서도 집행 기능에 이중 언어 사용이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봅시다!

 

 


바이링구얼과 집행 기능의 개념

  • 바이링구얼(Bilingual; 이중언어자)
    • 바이링구얼은 두 가지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 다중언어자(Multilingual)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 Executive Control)
    • 일부 상위 인지 능력을 통칭하는 개념.
    • 예: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 목표지향적 계획(Goal-oriented Planning), 억제(Inhibition) 등

 

 

바이링구얼은 '간섭 억제(Interference Suppression)'에 더 뛰어나다

바이링구얼은 다른 집행 기능의 면에서는 단일언어자(Monolingual)과 유사한 수준을 보이지만, 집행 기능 중에서도 '간섭 억제(Interference Suppression)에는 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입니다.

 

  • 간섭 억제(Interference Suppression)
    •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 Executive Control) 중 하나
    • 말 그대로 수행하고자 하는 과제에 방해되는 요소를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간섭 억제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카드 분류 과제(Card Sort Task)가 있습니다. 카드 분류 과제는 서로 다른 모양과 색상으로 이루어진 카드 중 모양 혹은 색상 중 하나를 기준으로 적합한 카드를 찾아내는 과제입니다. 이렇게 설명만 읽으시면 이게 어떤 과제인고...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사진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카드 분류 과제(Card Sort Task)

 

  • 색상(Color) 과제: 그림 A는 색상 과제입니다. 파란색 별 위에 '색상'이라는 지시 단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파란색 별의 모양이 아닌 '색상'에 집중하여, 초록색 별이 아니라 파란색 네모를 골라야 합니다.
  • 모양(Shape) 과제: 그림 B는 모양 과제입니다. 초록색 마름모 위에 '모양'이라는 지시 단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초록색 마름모의 색상이 아닌 '모양'에 집중하여, 초록색 동그라미가 아니라 회색 마름모를 골라야 합니다.

카드 분류 과제 (Card Sort Task)

  • 이 과제에서 중요한 것은 '과제의 변경 여부'입니다.
    • 지시 변경(Switch): 다른 지시로 바뀌는 경우.
      • 예: [시행1] 색상 → [시행2] 모양
      • '간섭 억제'가 더 많이 필요함: 지시를 변경했으므로 이전의 지시에 따른 인지 과정을 억제하고 새로운 지시에 따라 과제를 수행해야 하므로 '간섭 억제' 기능을 더 요구합니다.
    • 지시 변경하지 않음(No Switch): 한 가지 지시가 반복된 경우
      • 예: [시행3] 색상 → [시행4] 색상
      • '간섭 억제'가 더 필요하지 않음.

 

청소년이나 어른들의 경우 이 과제는 매우 쉽습니다. 하지만 이 과제를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면, 지시를 변경하는 경우에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계속해서 '색상'에 따라 카드를 분류하도록 하다가 갑자기 '모양'에 따라 카드를 분류하도록 지시하면 아이들은 '모양'에 따라 분류하지 않고 기존의 지시를 유지하며 '색상'에 따라 카드를 분류합니다. 아이들이 '모양'과 '색상'을 언어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수를 고려하여 연구자가 아이들에게 분류 지시가 무엇인지 물어보았고, 그 결과 아이들은 지시가 '색상'에서 '모양'으로 바뀐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바꾸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흥미로운 경향을 사용하여 4~5세 아동으로 이루어진 바이링구얼 집단과 단일언어자 집단을 대상으로 카드 분류 과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시 변경(Switch)한 경우: 바이링구얼 아동이 단일언어자 아동보다 과제를 더 잘 수행했습니다.
  • 지시 변경하지 않은(No Switch) 경우: 두 집단 간 차이가 없었습니다.

 

정리하면, 바이링구얼 아동의 경우 단일언어자 아동보다 '간섭 억제'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한편, '간섭 억제' 능력 이외의 집행 기능에는 두 집단 사이의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왜 바이링구얼의 경우 간섭 억제 기능이 향상된 것일까요?

 

 

왜?

바이링구얼은 두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지속해서 '간섭 억제' 능력을 연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책상 위의 연필을 본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국어 단일언어자는 '연필'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한국어-영어 바이링구얼은 인지 과정 속에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연필'과 'Pencil'을 모두 떠올리게 되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인지에 따라 하나의 언어는 억제하고 다른 하나의 언어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렇듯, 바이링구얼은 일상에서 두 언어 체계 중 하나를 억제하고 나머지 하나를 선택하면서 사고하기 때문에 '간섭 억제' 능력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까지 바이링구얼이 어떤 인지적 장점을 갖는지, 그 원리는 무엇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생각보다 한국인들이 바이링구얼에 해당합니다. 언어학과 언어심리학의 관점에서 바이링구얼은 두 언어를 모두 원어민처럼 구사할 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두 언어를 구사하되 일상에서 서로 다른 비중으로 두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바이링구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학업 혹은 일 때문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분들이라면, 바이링구얼의 장점을 아마 누리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포스팅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